작년에 대학교 처음 들어와서 생전 처음 들어보는 개념으로 가득한 영어 논문을 그것도 거의 매 수업마다 읽어 가야 하다니 정말 어려웠다. 처음 모국어에 관한 13 쪽짜리 논문을 읽는 데 꼼짝없이 5 시간 걸렸고, 다 읽은 후에도 실제로 이해한 것은 단 한 가지도 없었다. 또 어떤 논문은 작가가 문장을 너무 못 써서 (피땀눈물 흘리며 오천오백만 시간에 걸쳐) 다 이해하고 나니 별 내용 아니어서 허탈했던 적도 있었다. (읽으면서 엄청 욕했는데 사실 과제 에세이 제출하고 나서 읽어보면 얼레벌레 꾸역꾸역 쓰다 보니 내 문장들도 별 다를 게 없길래 읽기 힘든 논문도 이제 참아줄 수 있게 되었다ㅋㅋ) 나는 한국어로 읽는 것도 되게 느린 편이라고 생각했으면서 이런 영어 논문을 읽고 있자니 한국어로 읽으면 몇 배는 빠를 거라는 웃긴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많은 논문들을 구글 번역해서 읽어갔다. 한글도 읽는 속도가 빠른 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영어보다는 훨씬 나았다. 내 영어 읽기 속도는 수업 PPT 자료도 당장 이해하려면 구글 번역을 써야 했을 정도로 느렸다. 그런데 그렇게 1 년 동안 셀 수 없이 많은 논문을 읽어대니까 진짜로 읽기가 엄청 늘었다. 이제 아무리 어려운 영어 논문도 중간중간 모르는 단어를 일일이 찾아볼 필요도 없이 무지 빠르게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다만 한국어는 마치 이해하려 하지 않아도 들리는 것처럼 읽기도 그냥 어 한글이네? 인지한 순간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읽히니까 대충 훑어만 보는 게 가능한데 영어는 아직도 그게 좀 어렵다. 또 영어의 경우 논문, 기사, 책 같이 필요한 내용만 건지면 되는 글을 읽는 건 확실히 엄청 빨라졌지만 설명서를 읽는다든가 한 문장 한 문장이 중요한 글은 여전히 좀 느린 것 같다.
한국어로 번역한 논문도 많이 읽었고 과제를 쉽게 하겠다고 영어 대신 한국어 자료들을 찾다 보니 한국어 읽기도 빨라졌다. 읽기가 빨라진 것뿐만 아니라 수업마다 읽어가는 논문 내용도 너무 흥미로워서 읽기 자체에 마구 호감이 갔다. 중학교 때 이후로 스마트폰이랑 넷플릭스가 생기면서 책은 읽는데 오래 걸린다는 핑계로 책하고 멀어졌었다. 이제는 후루룩 후루룩 읽을 수 있게 되었으니 이 기회에 책을 다시 읽어 봐야겠다 하고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어차피 취미로 읽는 거라 굳이 한국어보다 독해력도 낮고 속도도 느린 영어 책을 읽지는 않는다. 어차피 학교 때문에 무지무지 많은 영어 논문을 읽어야 해서 연습은 충분히 된다. 그리고 나는 한국 작가가 쓴 책도 가끔 읽지만 독해력을 떠나 외국 책의 한국어 번역투를 되게 좋아해서 원서보다도 번역본을 좋아한다. 그래서 올해는 한국에 돌아간 여름부터 읽기 시작해 한글 책 스무 권 정도를 읽었다. 그렇게 많진 않지만 이만한 기간 안에 이렇게 많이 읽어본 적은 없는 것 같아서 너무 기쁘다! 또, 전에는 소설을 훨씬 좋아했는데 올해 읽은 책은 대부분 비문학이라는 점도 재밌다. (물론 분야는 뭉뚱그려 사회학 하나밖에 없지만.) 최근 논문 같이 문장마다 새로운 정보가 담겨있는 글만 계속 읽다가 끝까지 읽지 않으면 뭘 안다고 하기가 뭐한 소설을 오랜만에 읽으니까 뭔가 재미가 덜하더라고. 물론 여전히 소설 읽는 것도 좋아한다. 추천받더라도 내키지 않으면 안 읽을 거지만 그래도 괜찮은 소설이 있다면 추천받는다.
여름에 한국에 있을 때에는 도서관에서 종이책을 빌려서 읽었고 여기 와서는 전자책을 빌려서 아이패드로 읽었다. 성남시 전자도서관을 핀란드에서도 쓸 수 있다니 최고다. 그렇게 읽은 책을 Goodreads 앱에 기록하고 있다. 읽을 때마다 진행도 퍼센트를 올리고 다 읽으면 별점도 주고 내 서제에 쌓이는 게 은근히 성취감이 들고 동기부여도 된다. 연말에는 올해 읽은 책들에 대한 쓸데없는 통계도 내주는데 재밌다. 이 앱 처음 깔고 올해 목표를 10권으로 설정 해 두었는데 그것보다 훨씬 많이 읽어서 기분이 좋다. 내년에는 목표를 25권으로 잡으면 너무 많은 걸 기대하는 것이려나?